에세이

찰나의 용기가 인생을 바꾼다

essayist_colin 2022. 10. 10. 08:27

사진첩 정리 중 찾아낸 기록. 2015년 회사 직영점 동료들과 만리장성으로 야유회 갔을 때다. 나 빼고 다 중국 분들. 테라피스트로 일하던 중 2014년 하반기 북경에서 일할 기회가 생겨 찰나의 용기로 출국했다. 당시에 너무 어렸고 하던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다른 일도 잠깐 해보고(막노동) 다쳐서 고향인 구미에 있을 때였다.

 

첫 직장 상사가 연락이 와서 북경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이직한 회사에서 중국 북경에 직영점을 오픈하고 프랜차이즈 사업을 한다고 했다. 처음엔 고민하다가 한 번 다치고 나니 겁도 나고 해서 그냥 가겠다고 했다. 사실 돌아보면 그게 더 겁나는 결정이었고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업종이 뷰티다 보니 여성분들이 많았다. 훗날 중국 내 오픈한 프랜차이즈 지점 교육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오픈도 내가 가서 세팅했다. 당시 직영점 및 가맹점 동료들 위쳇 아이디가 남아있어 연락을 해봤는데 답장이 왔다. 

 

지금 내 중국어 수준에 놀라면서 당시를 회상하며 재밌게 대화했는데 그저 신기했다. 나를 어떻게 기억하냐고 질문했는데 일에 진중하고 근면했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초반엔 중국어를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묵묵히 일할 수밖에. 트레이닝 기간부터 현장에서 눈빛과 손짓, 발짓, 마음으로 소통하며 지냈었다.  

 
2015년 직영점 동료들과 고수북진(古北水镇)에서.

그래서 직영점 오픈 초반 멤버들은 대부분 소통을 제대로 못한 채 헤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도 답답했고 동료들도 답답했을 것 같다. 그리고 돌아보면 그땐 신체 능력 클래스가 달랐던 것 같다. 일도 많이 했었고 하루 영업을 마치면 당일 상황을 한국에 보고 했다. 그 와중에 살기 위해 중국어를 배우로 다녔으니. 처음엔 마트에서 물건도 못 샀다. 통역이 있다고 했는데 한 명뿐이었고 당연히 내 개인 통역이 아니었다. ㅎㅎ 정말 생존을 위한 중국어를 공부를 했고 그야말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당시 동료들을 꼭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그럼 당시 현장에서 해주고 싶었던 말들을 모조리 다..ㅎㅎ (사실 서로 많이 도왔다.) 세월이 꽤나 흘렀으니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북경에 남아있는 친구도 있고 고향으로 돌아간 친구도 있던데, 정말 반가울 것 같다. 또 가맹점 오픈 및 교육 출장을 다니며 인연이 된 사장님, 점주님들 그리고 직원분들도 연락을 한다. 이젠 정말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앞으로 종종 연락하기로 했으니 한국에 있어도 중국어 잊어버릴 일은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상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지식과 지혜를 꾸준히 축적하지만, 경험 상 어떨 땐 찰나의 용기가 인생을 바꾼다.

 

만리장성(万里长城)에서 개인 샷. 아직 저 날이 생생하다. ^^